난곡의 추억, 교하아트센터, 2007
이 작업은 위의 난곡가옥과 실제 똑같은 크기의 공간을 선으로 재현한 것이다. 이 공간의 동선을 따라 움직여 보면 그 집에서 산 사람들이, 좁은 공간 안에서 얼마나 부대끼면서 살아갔을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난곡(蘭谷), 서울 신림 3, 7동, 11~13동의 원래 이름이다. 옛날 이곳에 유배된 한 선비가 난초를 많이 길러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2001년, 정부는 전국에 있는 불량주거단지를 일제히 정비한다는 계획안을 내놓았는데, 당시 난곡지구도 불량주거단지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2003년 봄, 철거가 마무리되었고 아름다운 달동네 였던 난곡은 서울에서 사라졌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어떤 땐 그게 확실하게 느껴 지고 어떤 땐 매우 희미해서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모를 때도 있다. 교하아트센터에서의 이번 작업은 사실 공동 작업의 성격이 짙다. 나는 난곡 재개발지구의 어떤 집의 평면도를 원래의 크기 그대로 전시장에 재현했 는데, 그리 크지 않은 전시장 바닥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크기였다. 부엌은 몸을 돌리기도 어려울 만큼 비좁았다.
다른 방들도 인간이 머무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이 집은 전체 면적이 6평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방 두 개에 거실까지 있었다. 작은 주택이었지만 외부 지붕에 장독대를 두어 수납공간으로 썼고 거실에는 제법 큰 창을 두어 빛이 잘 들어오도록 했다. 그러나 화장실은 재래식이라 주택 바깥에 있었다.
다른 방들도 인간이 머무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이 집은 전체 면적이 6평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방 두 개에 거실까지 있었다. 작은 주택이었지만 외부 지붕에 장독대를 두어 수납공간으로 썼고 거실에는 제법 큰 창을 두어 빛이 잘 들어오도록 했다. 그러나 화장실은 재래식이라 주택 바깥에 있었다.
그곳에 살았을 사람들의 일상을 드로잉하다. 바닥 설치가 테이프로 그린 선 드로잉이므로 그에 따라 옷들을 솔기만 남겨놓고 면들을 제거해보았다. 선은 때때로 면보다 더 입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