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들의 폭포-흘러넘치는 옷들, 훈련원 공원, 1997
 이 훈련원 공원은 옷만 전문으로 파는 빌딩숲 사이에 있는 유일한 공원이다. 1999년에 패션상가 일부가 남대문에서 동대문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거평플라자, 두타, 밀리오레가 국제적 종합 패션상가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었다. 훈련원 공원은 이 빌딩들 바로 뒤에 있는 조금 한적한 장소였는데,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쉼터였던 곳이다. 이 공원의 지상 부분을 리모델링하고 공원 지하를 거대한 의류상가로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내 옷을 사용한 설치 작업을 해달라는 청을 받았다. 이 공원 한편에 작지 않은 인공폭포가 있었는데, 마침 이 폭포는 거평플라자와 다른 의류상가 빌딩을 등지고 있었다. 마치 두 의류상가 빌딩 사이로 폭포가 흐르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이 물길을 옷의 폭포로 만들기로 했다. 넘쳐나게 만들고, 얼마 되지 않아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옷들이 결국은 우리를 덮치고 말 것이라는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설치 장소가 학교와도 그렇게 멀지 않아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면 좋은 공부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깐 동안 망설였다. 한적한 공원은 한적하게 그냥 놔두었으면 좋겠다는 평소 생각도 있었고 다른 의도를 가진 공원 계획에 굳이 일조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 작업과 관계없이 그 계획은 진행될 테니 그것에 어떤 역할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자기합리화일까? 언제나 그런 함정에 스스로 빠져들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게 잘한 일인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문제는 설치할 장소를 보고 나면 ‘아, 거기에다 이런 작업을 하면 좋겠다’ 라는 그림이 떠오르고 그 다음 이렇게 저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이 달리게 되면 십중팔구 거절하지 못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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