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월출산 시루봉, 단채널비디오, 7분 34초, 2023
 
  서울 근교에 사는 클라이머들이 북한산 인수봉에 가는 것처럼 광주시 근교에 사는 클라이머들은 월출산 시루봉에 간다. 시루봉은 남도의 창(판소리)을 많이 닮았다. 부드러운 둥근 선들의 융기들, 야들야들하니 해어진 주름들, 유난히 많은 총탄 자국 같은 구멍들, 그 위에 여기저기 화려하게 흐드러진 바위꽃들.
  작가는 월출산 시루봉을 오르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만나는 시루봉의 촉각지도를 영상으로 그린다. 오톨도톨하고 까실까실하고 뭉툭하고 혹은 예리하게 느껴지는 손의 감촉을 따라, 시각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느껴지는 것들, 바위의 체온과 냄새, 작가의 육체와 바위의 신체가 서로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 일어나는 먼지들과 함께 월출산 생물들의 소리를 타고 어느 순간 시루봉이라는 존재의 내부로 스며든다.
  지금 접촉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형상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나에게 육박해 오는 근육질의 바위, 고체였다가 액체로, 어느 순간 기체로 한없이 변하는 신체로서의 바위, 그것이 어떤 형상이라 해도 이미 부적절함을 전제하고 불분명한 것에 기초한다는 것, 환원 불가능한 방법으로 외부에 우뚝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서의 시루봉! 을 그린다.
•너의 손을 나에게 줘.
•등뼈를 만져봐. 벌써 부풀고 있잖아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살살
 
•너에게 줄게
•낡은 이빨들과 그 안의 야들한 혀들.
•물렁한 근육들과 메마른 주름과 꼭지 없는 융기도 모두 다
•먹어줘. 꼭꼭 씹어서
 
•빠듯한 골 사이로ᅠ
•네 손가락과 네 발끝과 네 머리통과 네 어깨마저 쑤셔 넣어도
•나는 기갈증이 나
•이 모든 물기도 남김없이 빨아줘
 
•내려다 보지마
•검은 허공이 속삭이듯 너를 불러도
•듣지 마
•저 밑엔 아무것도 없어. 너를 안아줄
 
•멀리서 들리는 말발굽소리는 내게로 오는 것이 아냐
•내 얼굴에 노랑꽃이 너를 기다린 것은 아니듯
 
•난, 난 무쟈게 돌고 또 돌아
•파란 물이 될 거야
•흐를 거야
•넘칠 거야. 지구 밖으로
•구렛나루 갖고 싶어하는 그 여자처럼
•한낱 노래가 되기 위해 푸르륵 발버둥치는 너처럼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승가사 마애불, 단채널비디오, 17분 19초, 2019
 
  이 작품은 서울의 북한산 승가사 대웅전 뒤편으로 가파른 108계단을 오르면 그 끝에서 만날 수 있는 마애여래좌상을 손 대신 카메라와 목소리로 만져보는 작품이다. 커다란 바위 위에 새긴 불상, 즉 닿을 수 없는 존재와의 접촉을 상상하며 전개되는 작품은 근엄한 부처님의 신체를 말로 더듬는 유머를 경유한다. 여기에는 감각의 재현, 수행과 실천, 그리고 진실을 현시하는 사건으로서의 미술에 관한 질문이 담겨 있다.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거기를 살살 만져봐요. 보드랍게. 그리고 손을 조금 위로 올려서 오른쪽 무릎 전체 동그란 면을 더듬다 보면 다리가 접힌 부분에 생긴 옷 주름 세 개가 있죠? 거기를 선 따라 하나하나 엄지, 검지로 밀면서 살짝 만져봐요. 약간 까슬까슬하죠?”     “햇볕이 아주 따습고, 그리고 돌기는 까끌까끌하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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