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가 돌아왔다, 2채널비디오, 10분 38초, 2023
 
  198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면서 대한민국의 버드나무는 멸종되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가로수로도 쓰이고 강가에도 많은 버드나무의 씨앗이 사람들에게 알레르기를 일으켜 코에 염증을 일으키고 심하면 온몸에 염증을 일으킨다는 생물학의 대가이며 국제 알레르기 협회의 고문이기도 한 모스 박사의 논문에 그렇다는 것이었고 한국 정부에서는 버드나무 하나로 성공적인 올림픽에 장애가 되는 것은 모두 치우는 것이 당연했으므로 모든 가로수와 강가의 버드나무를 다 베어버리라고 각 지방 행정처에 하달하였다. 성공적인 서울 올림픽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도 버드나무를 다 베어버렸고 그 이후 모든 나라에서 너도나도 다 버드나무를 베어버려서 지구에는 한 그루의 버드나무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 그래, 그때 나는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꿈속에서라도 수백 명의 비염 환자들을 살해한 경력이 있으니.
그렇지만 어쩌자고 그런 쓸쓸한 날에, 우리를 다 베어서 내동댕이쳤을 때
당신은 말리지 않았다. 내 어이없는 죽음을 두고 심지어 울지도 않았지.
이 강가에 봄이 몇십 번이나 오고 그동안 내 씨앗들이 한 번도 날아다니지 않았는데도
당신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나에게 매일 찾아와 머리를 부딪히며 안아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우리가 과연 함께이기나 했었을까?

- 버드나무야, 반갑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때 너희들이 모두 잘려 나갈 때 멈추게 하지 못했다.
 
나는 경계 위에 떠 있어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명확히 하세요.
나는 발이 없어요.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물론 날개도 없지요
그래서 더 고집스럽게 하체에 힘을 주어야 밀리지 않으니.
물에 젖은 한쪽 가랑이를 움켜쥐어야 움켜쥐어야,
소태같이 쓴 입술, 윤기 나는 눈썹이었다가.
빨간빛으로 물든 나의 초록 이파리는 매일 저녁 추락을 꿈꾸는데
가느다랗지만, 질긴 잎자루는 놓아주지 않지요.
더 싱싱하게 붙들어요.
하긴 추락하여야 날 수 있다는 것을 잎자루가 알 리가 없지.
가을까지 기다려.
늘 바람이 대롱대롱 매달려요.
내가 수직으로 팔을 늘어뜨리면 바람은 어느새 내 옆구리에 자기 몸을 착 붙여요.
내가 실가지 끝으로 조금 꾸물럭거리면 바람은 자기도 살짝 파동을 만들어요.
어둠 속에서 치르르 몸 전체를 한번 빙글 돌아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내가 몸을 일으켜 팔을 뻗어 소리를 지르면
그제야 자기 어깨에 얹어 준다니까요.
난 바람을 타고 그 위에서 한껏 그네를 타요. 멀리 굴러요.
미친년 머리카락이 되어 마음대로 헝클어져요.
눈물 떨구면서 이승 떠나며 무당의 요령처럼 찰랑여요.
이 강 너머 저 서해 너머 흘러넘쳐요.
비가 오면 나는
검은색 사제가 되어 그를 모셔요.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 안으로 접어요.
나의 온몸을 비틀어 더 더 세차게 비에게 반응해요.
전신으로 흔들며 지지지 노래를 울리면서, 투정하며 받아요.
회초리처럼 아프게 때리는 비는 나의 상처 속으로 쏟아져요.
살 속까지 내리꽂히며 몸을 쿡쿡 찌르는 통쾌.
나는 속절없이 잠겨요. 환장하게 달콤해요.
쪽쪽 빨아 끝없이 팽창하는 기운,
풍경 전체가 치렁치렁 울렁울렁
먼 땅끝까지 물소리 넘실넘실 번져가고
습하고 어두운 냄새가 맵싸게 코를 찔러요.
어둠과 빛, 물과 땅, 죽음과 삶, 너와 나의 경계에서
필리리 필리리~
젖은 피리 소리에 이끌려 몸을 뒤채요.
모든 것이 뒤집혀요.
버드나무 씨앗은 가없는 빈 공간을 한동안 떠다녔다.
  버드나무 씨앗은 가없는 빈 공간을 한동안 떠다녔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버드나무 씨앗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씨앗은 때마침 우주공간을 탐색하며 돌고 있는 대한민국 스페이스X 나로호 연료통 끝 꼭지에 약간 남아있던 습기 덕분에 그곳에 붙게 되었다. 버드나무 씨앗은 인공위성이 도는 대로 따라 우주를 유영했다. 나로호가 임무를 다하고 지구의 중력 안으로 들어가 태평양 바다를 향해 직진할 때 떨어져 나와서 혼자 날다가 때마침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먼 우주의 구멍에서 빛기둥이 내려와 어둠 속에서 씨앗의 길을 밝혔다. 씨앗 주위를 감싸고 있는 하얀 털들이 낙하산처럼 축 날개를 펼쳐줘 공중을 천천히 휘돌면서 떨어졌다. 씨앗은 한참을 더 떨어졌다. 씨앗은 물과 땅이 만나는 곳에 떨어져야 했다. 그래야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추락하는 씨앗에게 보이는 것은 아래쪽의 시커먼 허공뿐이었다. 엎치락뒤치락 씨앗은 몸을 뒤집으며 자신의 몸을 내려놓을 곳을 찾느라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그 공허 속에서 수많은 눈이 이 난데없는 빛줄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수많은 물새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씨앗은 추락하는 자신을 받아주려고 날아오르는 물새들의 날갯짓을 느낄 수 있었다. 씨앗은 자신을 살며시 받아주는 물새들의 보송보송한 깃털에 포근하게 안긴 채 숨을 가다듬었다. 물새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 근처에 살포시 씨앗을 내려놓았다. 마침, 그곳이 물과 경계에 있는 땅이었다. 버드나무 씨앗이 몸을 숙여 모래흙의 사이로 틈을 내어 비집고 들어갔다. 물새들은 씨앗 위에 흙을 덮고 살며시 눌러 주었다. 아무도 그곳 위를 밟고 지나가지 않았고 근처에 사는 게들 아비 수달 고니 비버 온갖 물고기까지 모든 동물이 어서 빨리. 버드나무 싹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씨앗은 짐승들의 마음에 감사하여 온 힘을 다해 씨앗에 수분을 빨아들이고 또 빨아들였다. 이윽고 날씨가 따뜻해지자 씨앗에서 작은 싹이 뽀죡하게 나오더니 덮힌 흙을 들어 올리며 큰 소리를 내었다. 뾰지지직~ 튀어나온 싹은 더할 수 없이 통통해져 예쁘고 좋은 향기가 났다. 아기물새 한 마리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그 싹이 달린 씨앗을 먹어버리고 말았다.
  아기 물새가 씨앗을 삼키자 아기물새의 배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기 철새 온몸의 모든 깃털이 일어 서더니 부르르 떨리기 시작하였다. 아기 물새의 깃털들이 버드나무 솜털처럼 하얗게 변하더니 아기 물새의 머리 쪽에도 하얀 깃털 벼슬이 솟아났다. 빵빵한 배가 터지기 직전에 꼭 다물었던 아기물새의 작은 부리가 피식 바람 소리를 내면서 뱃속에 것들을 모두 토해내기 시작했다. 물새의 입에서 계속해서 하얀 버드나무 씨앗들이 줄줄이 나왔다. 아기물새의 뱃속에 들어간 버드나무씨앗은 수천 개의 씨앗들이 되어 나왔고 바람결에 휘날리며 춤을 추었다. 근처에 있는 물새들의 날개에 뿌려졌다. 놀란 물새들이 이 씨앗들을 뒤집어쓰고 갯가를 비행하기 시작했다. 갯가는 온통 버드나무의 씨앗들로 하얗게 덮이기 시작했다. 물새들은 떨어진 씨앗 위로 흙을 물어다 덮으며 작은 부리로 다독여주었다. 따뜻한 햇볕이 그 위를 내리쪼이고 싹은 드디어 햇빛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난지도 서쪽 강변에 버드나무 무리가 생겨난 것이다. 조그만 한 개의 씨앗 안에는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들어 있었다. 씨앗은 곧 싹을 틔우더니 하늘에서 햇빛이 쏟아져 내려와 무럭무럭 자랐다. 온갖 들꽃, 나무, 풀들이 버드나무와 함께 소리 없이 풍부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온 사방에 퍼졌다. 먹이가 많아지자 철새들, 많은 짐승들도 난지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난지도에도 생겨났고 을숙도에도 생겨났다. 물의 가장자리 어디든 버드나무 씨앗이 날아가 숲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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