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기에는 매우 개인적인 작업, 나무에 대한 애도, 아버지에 대한 애도, 선배의 애도 등에서 점차 사회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국립극장 계단의 작업을 하면서 작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분기점을 야기한 계기라도 있으신지요? 그리고 지속된 과정 속에서 어떤 변화를 갖게 되었는지요?
개인적으로 국립극장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하면서 installation이라는 형식에 매료되었고 굮립극장 계단작업을 하게 되었고 내가 잘할 수도 있겠다는 어떤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본능에 가까운 공간감과 장소가 가지는 , 그곳에서 맡을 수 있는 인체의 흔적, 물질과 비물질에 대한 천착, 등등이 설치에 필요 조건이라 봤는데 내가 그게 좀 있다고 봤다. 그 이전의 헤맴을 끝내고 확실히 작업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설치미술을 하면서, 그 장소의 공기에 내가 스며드는 어떤 감각도 중요했지만 이후에, 이미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의논 타협 협업의 과정들이 필요했고 그 과정을 완수해내기위해서 나의 성격의 일부분의 개조도 필요했다. 나의 없는 외향성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 많은 수의 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하시고 기획도 하셨는데,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있으셨던 것인지 아니면 장소특정적인 작업에 더 흥미를 갖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시다시피 처음에는 어떤 장소에 스며드는 게 중요했고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국립극장계단작업은 그 화강석 계단의 경직성과 권위를 말랑거리게 하고 흐트러뜨리고 싶어서 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계단을 밟고 다닐 사람들의 발끝 감각을 아슬아슬하게 혹은 폭신하게 만들고도 싶었다. 인사동 육교도 그렇고. 나에게는 장소특정적 작업이거나 공공미술이 그게 그거였는데 나중에 불광천프로젝트를 하면서, 장소보다는 장소를 둘러싼 관계들에 더 비중이 옮겨간 것같다. ‘실신프로젝트 남양광하’할‘때는 정말로 아무것도 안 만들고 최소한의 시각작업만 하려노력했다
- 이후 늘, 길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방이나 집이 등장합니다. 바다에서도 방을 등장시킵니다. 길과 방, 바다와 방은 어떤 관계인지요?
그렇다. 늘 길 위에 있었다. 난 나를 바꾸고 싶을 때, 혹은 변화가 필요할 때 나를 어떤 다른 장소에 옮겨놓기만하면 그게 좀 쉬웠다. 그게 이사이거나 먼데 레지던시 프로그램이거나 긴 산행이거나. 방과 집은 나에갠 일종의 텐트같다. 쉽게 접고 또 쉽게 펴놓을 수 있는. 방과 길은 내게 서로 길항하는 존재다. 방에 한동안 나를 감춰두었다가 어느 순간 몸을 일으켜 길로 나선다. 나의 방에서 나와 금성까지 갔다오기를 되풀이한다. 그 사이에 바다와 길이 있다.
- 폐경선언 이후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요? 여성이라는 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언이라고 하면 좀 그렇고 그냥 하나의 통과의례를 치루고 싶었다. 폐경을 한 모든 친구들의 어깨를 겯고 내 옆자리를 내어주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 전시이후 약간 내 몸에 안맞는 세간의 평이 있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한편으로 얻은 것은 많은데 무엇보다 폐경을 통해서 그리고 의례를 통해서 외계인이아니라 더 확실히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의 일원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아이를 출산헸을 때처럼. 내가 여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남성과 비교하는 측면에서라면, 좋다. 남성이라면 절대 해보지 못했을 몇가지 경험들의 감각이 나에게 중요했고 늘 생리를 해왔던 경험도 ,힘들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나를 한 마리의 동물로서 성장하게 한 그중 하나다.
- 바다로 나아가신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거의 모든 작업이 산과 같은 육지입니다. 이번 전시는 물과 함께 합니다. 물론 불광천등 강에서 한 작업도 있지만, 강은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난 사실 산을 많이 좋아하고 산이 주는 무궁무진함이 끝이 없다고 만족하고 있었고 바다로 나아간 것은 단지 고래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바다에 의외의 선물이 많았다. , 아우, 바다는 그 거침과 그 깊이와 그 전복과 그 회오리와 빛이 없는 바다밑의 해양생물까지 상상력을 더많이 자극하는 장소인 것같다. 게다가 소리의 영역까지 포함하면 진짜 왕건이다.
- 옷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시는지요? 아버지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그와 다르게 옷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있으신 것인지 아니면 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옷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집에 옷이라는 재료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옷에 내 생각들을 투사할 수 있었던 시간이 많았고 그래서 뽑아 쓰기 쉬운 소재였다. 뭐 옷을 다루다보니 옷을 자르면 천이 되니까. 천으로 사용한 적도 있지만 옷을 그 무게로 혹은 부피로 사용한 적도 있고. 하지만 옷을 신체와 따로 떼어서 생각한 적은 없는 것같다. 언제든 그 속에 있었을 몸을 같이 생각하면서 작업해왔다.
- 도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요? 좀 추상적이긴 합니다만, 도시라는 공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경상도 산골에서 났지만 아주 어려서 도시로 와서 난 여전히 도시사람인 것같다. 산에 갔을 때도 어김없이 도시를 바라본다. 내게는 도시와 산 사이에 모든 것들이 있다. 인간들이 밀접해서 사는 것은 중요하다. 게다가 인간의 서식처인 도시는 좀 줄어 들어야한다. 비인간들을 위해서 좀더 좁혀 살면 좋겠다. 비인간들의 서식처를 침범하지않는 범위내에서의 도시를 연구해야한다. 멧돼지가 도시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들의 서식처를 보장해야한다.
- 생각하시는 연대는 어떤 것인지요? 이 연대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혹은 지구로도 확장되는 것인지요?
물론이다. 요사이 나의 연대는 사람보다는 동물에게 식물에게 산에게 바다에게 지구에게 가있는 것같다. 평소에 ‘연대는 위험한 자리에 같이 서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지난 번 수유너머 공동체의 미투 사건때 위험한 자리에 서있는 그들과 같이 못했다. 아니 어디가 더 위험한 곳인지 확신이 안서기도 했고.
- 미술과 정치가 만나는 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특히 케테 콜비치의 그림이 생각난다.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여타의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뚜르르 작업할 때 오히려 진짜 정치적인 작업으로 남을 수 있는 것같다. 내 작업이 어떤 정치를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대중의 삶속으로 들어가 살아 움직일 수 있다면 정말로 감사한 일이겠지.
- 작업에서 형식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형식에 대해서 집중하는 작가인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형식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형식이 디테일과 깊이, 미감에도 관여하니까.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형식에 집중하지는 못했던 것같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형식을 바꾸어버리기도 하고 형식을 바꿀 때 은근 쾌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