휭, 추-푸, 아르코미술관, 2021
미완결: 머무르지 않는 노래 - 김미정 큐레이터 2021
전시장에 부착하기 위한 〈고래자세〉(2018), 〈사자자세〉(2017) 작품 설명을 작성하면 서 나는 ‘실패’라는 단어를 썼다. 이 단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알기에 사용을 망설였지만, 두 작품을 포함해 〈소리의 포말〉(2020)과 이번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으 로 진행한 〈비봉 소리요가: 고래와 함께 미술관에서 소리로 요가하기〉(2021)에서 고래의 소리를 성실히 발화하는 작가를 볼 때마다 물음표를 띄웠던 기억을 떠올린다. 누군가가 되려고 하는 시도는 어떤 방식이든 미끄러진다. 고래의 소리를 ‘휙뽀옥’으로 받 아쓴다 해도 동일하게 소리 낼 수 없으며, 사자의 포효가 요가의 사자자세와 일치할 수 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작가는 자신이 비인간 동물이 되려는 과정이 늘 실패의 연속임 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과정들은 되기를 위한 완벽한 모방이라기보다, 다른 세계에 속하는 존재와 관계를 맺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결연으로서의 융합에 가깝다. 그리고 작가는 무모해 보이는 이 시도조차 없다면 고래를, 사자를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일이란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그 실패들은 오히려 작가로 하여금 비인간 동물에게 다가가기 위한 또 다른 동력으로 작동된다. 작가 스스로가 작업이 수행이라고 말하는 지점은 결국 이러한 실패의 반복이 쌓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누구도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에게 이끌려서 예기 치 못한 삶으로 끌려들어 가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해러웨이의 말 처럼, 작가는 비약적인 상상력을 매개로 비인간 동물과의 결연을 자처하며 알 수 없는 그들의 삶 속으로 자신을 계속해서 밀어 넣는다. 전시장 벽에 그렇게 실패라는 단어를 붙이며 부디 누군가 그 단어의 범위와 의미를 이 해해 주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라는 질문이 전시장에 가득했으면 했다. 물론 그 질문에 작가는 작품으로 몇 번이고 대답했겠지만, 이 전시가 끝나도 어딘가에서 고래, 사자 혹은 비인간 존재의 언어를 온몸으로 노래하고, 다가갈 수 없는 대상과의 접촉을 설명하고〈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2020), 논밭에서 바다를 그리며〈각각의 이어도〉(2020) 헤엄치는 그를 다시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을 것같다.
여덟 마리 등대, 스피커 8대, 13분 1초, 가변크기, 2020
고주파와 저주파 음역대를 오가는 고래의 소리는 깊은 바다를 누비는 동족 간 소통의 도구이자 외부 세계를 인지하는 매개이다. 그러나 최근 선박과 비행기 등이 만들어내는 소음으로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고 있으며 심각한 경우 귀가 멀거나 길을 잃기도 한다. 작가는 인간의 언어로 온전히 들을 수도, 묘사할 수도 없는 고래 8종의 목소리를 MBARI(몬터레이만 아쿠아리움 연구소, Monterey Bay Aquarium Research Institute)가 녹음한 데이터를 변형하여 전시장에 재생한다. 소리를 통해 자신들의 세상을 탐구하는 고래들처럼, 관객은 뗏목처럼 만들어진 작가의 열린 ‘방’에 누워 바다를 느끼며 함께 유영한다. 고래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세계는 관객의 신체와 맞닿아 공감각적인 경험을 만들어낸다. -
아르코미술관 도록
각각의 이어도, 4채널 비디오, 2020,
1채널: <논 속 수영>, 1분 4초, 2,3 채널: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실시간 cctv 재생 , 4채널: <물 속 숨소리>, 4분 42초
작년부터 이어도에 한번 가고 싶었다. 바다 한가운데 가면 뭔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배가 잘 뜨지 않아서 막상 이어도엔 가지 못했다. 지난달엔 배가 뜬다길래 제주도까지 갔으나 전날 배가 취소되어서 못 갔다. 그제는 막상 하루 전날 오라니 웬 취소해야 할 게 그리도 많은지 또 못가고 말았다.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이어도는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어도 CCTV를 인터넷에서 실시간 영상으로 조그만 화면으로 보게 되었다. 저곳이구나!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었고 마침 나의 전화 문의에 못 이긴 기지 측에서 카메라를 다시 바꾸는 대공사(?)를 해주었다. 실시간 CCTV를 작업으로 가져오면서 작가로서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실시간으로 날아다니는 수많은 새와 비 오는 기지, 석양의 기지(2번째 채널), 전시 마지막쯤에는 보트 착지(3번째 채널) 카메라에 작은 배가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CCTV를 가져온 나의 행위에 이상한 안도감이 생겼다.
논과 바다(1번째 채널)는 고래 작업을 시작한 뒤로 벼가 일렁이는 논을 보아도 뭔가 하늘을 나는 헬기를 보아도 바다가 있는 것이다. 온통 바다다. 논과 바다는 변기에 물을 내리다가도 어디선가 물소리만 들려도 바다가 보이더니 급기야 논에 출렁이는 벼를 보았는데 바다 같았다. 4번째 채널은 실제로 바닷속을 촬영하러 바닷속으로 스쿠버 하러 들어갔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금방 나오고 말은 경험을 그렸다. 이퀄라이징(Equalizing; 압력 평형; 외부의 압력인 수압과 우리 귀의 내부의 압력을 동등하게 해 주는 것)이 제대로 연습 되지도 않았는데 수중 촬영을 하겠다고 고프로 카메라 가지고 물속에 들어갔다. 10분도 안 되어 짠 바닷물을 한 사발 들이켜고 나서야 나와야 했지만, 그 따뜻함, 그 몰랑몰랑함을 잊지는 못하겠다. 바닷속에서 내는 숨소리는 이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키워드다. 다른 세 개의 채널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고 이 4번째 채널에서만 바닷속 소리가 있는데 관객이 지정 위치에 섰을 때만 소리가 들리도록 설치하였다.
과연 CCTV는 작품이 될 수 있는가? 새삼스럽게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변기>가 떠오르지만, 작가는 그것과는 다른 작업이 되길 바랐다. 이 <각각의 이어도>는 상상이 먼저 있고 풍경이 따라온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작품 <각각의 이어도>에서 CCTV는 단순한 중립적 전달 매체가 아니라 매 순간 달라지고 새롭게 관계를 구성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이 작품에서의 CCTV는 작가가 이어도에 가고자 시도했으나 계속 못 가게 되고 이어도 사이트에 자주 드나들면서 CCTV를 보게 되면서 이왕이면 좀 더 선명하게 이어도를 보고 싶은 마음에 직접 전화도 하는 관심에서 그 개입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에서 그 과정들과 순간순간 달라지는 이어도의 주변 바다의 풍경을 관객들과 같이 공유하고자 했다.
길을 잃을 줄 아는 물의 목소리, 퍼포먼스-득능막망(리금홍, 윤결, 이수영, 김현주, 이상호, 김준아, 강현아) 2021
바다생물다라니, 집체 낭독, 2021
비봉2길 소리요가(구윤지, 윤현길, 정주연, 황수경, 허윤희, 최연하, 조영주, 홍이현숙), 퍼포먼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