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광사 근방, 단채널, 2020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촬영 중에 맨살을 간지럽히는 모기를 손으로 쫓아내면서도 고양이에게 눈을 떼지 않는 작가의 모습이다. 작가가 의도하진 않았겠으나 이 장면은 비인간 동물과 인간이 각각의 세계에 개별로 존재하거나 서로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같은 공간을 점유하며 공생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작가는 그렇게 비인간 동물의 언어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림자로 호랑이 형상을 쓰다듬고, 귀를 기울이며, 곁을 내주지 않는 고양이와 눈을 맞추고 함께 뒹군다. 여기서 작가가 비인간 동물과 직접적 으로 접촉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마침내 고양이가 작가가 다가오는 것을 허락했을 때 이 둘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춤추듯 움직인다. 그들을 묶는 공통의 언어는 이성적인 발화가 아니라 눈을 맞추고 열린 몸이 부딪히는 순간이다. 각각의 터전이 결국 교집합된 하나임을 인지할 때, 비로소 상호 간에 언어가 보이고 들리기 시작한다.
김미정(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