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교 프로젝트, 월간 아트 2000년 10월호 인터뷰


이번 프로젝트를 구상한 이유는?
- 이번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언제부턴가 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바로 설치 미술이 미술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좋은 방식의 하나라고 생각케 되었다. 육교 작업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대접해주고 위무하고자 하는 예술의 아주 근본적인 태도에 많이 충실할 수 있어서 좋았다. 육교는 사람들의 시선의 높이를 짧은 시간 안에 4.1m위로 올려주어 사람들의 시야의 각도와 넓이는 그만큼 폭이 넓어진다. 사람들이 일단 육교위에 올라서면 아래서 보았던 사물들과 어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을 충분히 이용하면 육교는 일시적이나마 현실과 거리를 둘 수 있는 환타지를 줄 수 있는 장소로서 예·술에 온몸을 맡길 수도 있는 집중력을 유발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속적으로 천을 이용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유는? 작년 여성미술제에도 작품이 출품되었습니다만, 특별히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과 관계가 있습니까?
- 정확히 말하면 천이 아니고 옷을 써 왔다고 할 수 있다. 별로 거창한 이유는 없다. 아버지의 직업상, 집에 옷이 많았다. 내 경우, 주제에 맞는 재료를 선택했다기 보다 집에 널려 있는 옷을 쓴 것이 곧 작업이다. 옷들은 어려서부터 나의 주된 놀이감이었고 내가 혼자 힘으로도 완성할 수 있고 비교적 잘 다룰 수 있는 재료였다. 게다가 재료 준비하는데 돈이 들지 않아서 쉽게 내가 하고 싶은 규모를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지원금이 있었고 생전 처음 새 옷감를 가지고 작업할 수 있어서 아주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대학 조소과를 졸업했을 당시만 해도 모든 조각 작품은 돌이거나 나무, 브론즈로 만들었다. 사실 옷은 돌이나 나무 브론즈등의 재료보다 훨씬 부드럽고 다루기 쉽고 유연하다는 점이 훨씬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은 언제나 내게 화두로 온다. 인간의 성적 정체성에서 성기 중심의 담론을 빼면 과연 어떤 얘기들을 할 수 있을까? 한 인간 안에서 같이 존재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탐구가 오히려 더 편견없이 성의 본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나의 작업 방식이 많이 남성적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은 아주 여성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작품은 여성적인가 남성적인가. 나는 어떤 작품이 여성적인지 남성적인지 또는 어떤 사람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 인간 안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어떻게 서로 작동하는지, 그 길항적인 관계에 더 관심이 많은 것같다. 이번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게다가 화랑들이 밀집한 인사동과 사간동을 연결하는 육교에서 행해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장소성은 설치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만. 물론이다. 나는 나의 사춘기에서부터 지금 사십대의 나까지 내가 지나온 시간에 나와 함께 있었던 이 공간(광화문과 효자동 안국동 그리고 인사동)을 특히 사랑한다.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이었던 1969년 2월 어느날부터 2000년 오늘까지 그 공간들은 나와 함께 했다. 나는 아직도 중학교 배정원서를 들고 처음 이 거리에 왔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설치미술은 설치되어지는 어떤 장소의 의미를 첨예하게 살려내는 리얼리티의 예술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그 장소의 공간성를 아주 적확하게 파악해야 하며 동시에 그 공간을 시간과 함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영속적 보전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단명성을 표방하는 설치미술에서 공간과 시간은 아주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 그 육교는 이전에는 없었으며 아마도 조만간 어느 시점에는 다른 방식의 육교가 서든가 혹은 지하도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설치미술은 한시적이며 극히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미술이 장식물로서의 역할을 버리고 미술본래의 정신에 충실하여 적극적으로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한다는 점에서 설치미술은 매우 매력적인 표현방식이다.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은 언제나 내게 화두로 온다. 인간의 성적 정체성에서 성기 중심의 담론을 빼면 과연 어떤 얘기들을 할 수 있을까? 한 인간 안에서 같이 존재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탐구가 오히려 더 편견없이 성의 본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나의 작업 방식이 많이 남성적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은 아주 여성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작품은 여성적인가 남성적인가. 나는 어떤 작품이 여성적인지 남성적인지 또는 어떤 사람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 인간 안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어떻게 서로 작동하는지, 그 길항적인 관계에 더 관심이 많은 것같다. 이번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게다가 화랑들이 밀집한 인사동과 사간동을 연결하는 육교에서 행해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장소성은 설치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만. 물론이다. 나는 나의 사춘기에서부터 지금 사십대의 나까지 내가 지나온 시간에 나와 함께 있었던 이 공간(광화문과 효자동 안국동 그리고 인사동)을 특히 사랑한다.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이었던 1969년 2월 어느날부터 2000년 오늘까지 그 공간들은 나와 함께 했다. 나는 아직도 중학교 배정원서를 들고 처음 이 거리에 왔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설치미술은 설치되어지는 어떤 장소의 의미를 첨예하게 살려내는 리얼리티의 예술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그 장소의 공간성를 아주 적확하게 파악해야 하며 동시에 그 공간을 시간과 함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영속적 보전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단명성을 표방하는 설치미술에서 공간과 시간은 아주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 그 육교는 이전에는 없었으며 아마도 조만간 어느 시점에는 다른 방식의 육교가 서든가 혹은 지하도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설치미술은 한시적이며 극히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미술이 장식물로서의 역할을 버리고 미술본래의 정신에 충실하여 적극적으로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한다는 점에서 설치미술은 매우 매력적인 표현방식이다.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