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의 승가사, 단채널비디오, 6분 36초, 2019
 
“오후 2시, 태양의 남중 시각에, 해발 434미터의 승가사로 수직 이동하면 갑자기 낮아진 공기압 속에서 볼 수 있는 것들, 감각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 한낮의 시간에 빨래 널은 대웅전 뒷마당을 어슬렁거리거나 절 주변을 배회하는 들개들을 쫓아다니고 산괭이들과 함께 달리며 축지법을 연습하고 죽은 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찬 명부전 내부를 엿보며, 마애불의 화강석 피부를 눈으로 어루만지며, 차츰 그곳에 젖어 드는 나의 신체와 그 움직임을 관찰하여 새롭게 감각하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 오고 있다.
이곳에 일렁이는 해방감과 아이러니, 돌연변이 유전자의 왕성한 활동,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의 비인간들의 유희, 무한한 용납 안에서의 도발적이고 발작적인 세계, 금기된 공간에서 트로트처럼 신명 나는 불경 소리, 수상한 숨소리, 그리고 어긋난 존재들, 수평이동과 수직이동의 밸런스 혹은 언밸런스...
 
이곳은 너와 내가 드디어 만난 곳이다. 아니 이별했던 곳이지. 도대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우리가 울며불며 헤어졌던 곳이다. 그러나 한 세기가 가기도 전에 이제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 세월 동안 나는 몸이 사라졌고 넌 머리가 없어진 채로 다시 만났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스레 머리였던 자리와 몸이었던 자리를 이어 붙여 하나의 몸을 만들었다.
 
나의 여러 개의 눈이 너무 빤히 너를 지켜보고 있어서 넌 어지러워했고 나 또한 이상한 은빛 털들이 온몸에 주렁주렁 달린 네가 낯설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육신이 여기저기 잘 안 맞아 울렁불렁했지만 이젠 뭐, 동시에 움직여도 별 무리 없어 보인다...
난 여우 비슷하게 생겼지만, 여우로 살았던 것은 아니고 네가 사람과 비슷하지만 딱히 사람은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뭐인 것처럼 보일 뿐.
이 골짝에 살고 있는 수많은 것들은 숨어 산다기보다는 흔히는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딱따구리의 머리와 두더지의 앞발을 가진 너구리, 절 입구에서 자주 보이는 갈색 들개들은 오래전에 죽은 나바호족의 영혼과 한 몸이다. 저 앞에 9층 석탑이 매일 조금씩 흔들리거나 가끔 비스듬히 쓰러져있거나 하는 것은 그 속에서 수백 마리의 박쥐들이 돌아다니며 춤추기 때문이다.
 
이곳엔 유난히 뱀들과 한 몸인 소나무들이 많다. 꼬불탕꼬불탕 생겼다. 뱀은 나무와 함께 살면서, 포플러 하늘소, 솔노랑잎벌, 깍지벌레, 얘들과 수액과 타액을 주고받는다. 새로 출현하는 여러 종류와 이곳에 사는 어떤 것들도 혼자인 것은 없다.
오후 두 시, 태양이, 9층 석탑 정수리로, 수직으로 내려꽂히면 일순 모든 것들이 정지한다. 잠깐의 정적!! 하나 두울 하나 두울 / 딱 두 번 숨을 쉬면 요이땅! 모든 것들이 솟구쳐 오른다. 풍경 뒤로 물러나 있던 모든 존재가 튀어나오며 함성을 지른다.
이 계곡 곳곳의 것들, 인간이 아닌 비인간들의 소리가 계곡을 타고 한꺼번에 몰려가 꼭대기를 휘감고는 산허리를 출렁이게 한다. 무지개 같은 것이 햇빛을 가르며 허공에 둥실 떠오르고, 멀리서는 온갖 벌레들의 풍요한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층층으로 겹쳐 접촉하고 서로를 섭취하며, 예민한 촉수들로 에너지들을 만들고 방출한다.
 
이곳에 모인 죽은 자들 또한, 위험하고 아름다운 신들과 하나 되어, 뭇 것들을 홀리는 기묘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온갖 잡것들의 야단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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