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2채널비디오, 7분13초, 2014

  인천문화재단 산하 인천아트플랫폼은 2014년부터 ‘평화미술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50여년간 접경지역인 백령도의 유일한 민간 의료시설이었던 백령병원을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는 복합예술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백령병원은 천안함 사건 때 일부 장병의 시신이 안치됐던 곳이기도 하다.
  나는 2015년 여름 한 달여간 백령도 평화예술레지던시에서 머물면서 작업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백령병원 동네에 사시는 영숙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영숙 할머니는 남편이 젊었을 때 북파간첩으로 일했고 그 후 돌아가셔서 유공자로서 살아가신다. 마침 현충일 추모식은 백령도의 매우 큰 행사인데 영숙 할머니가 같이 가자셔서 따라나섰다. 헌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남루한 옷차림의 사나이가 나타나 헌화를 하러가는데, 거기 배석해있던 공무원들이 매우 긴장하는 눈치였다. 영숙 할머니는 내게 “그 분이 유명한 전쟁용사(별명; 백령귀신)인데 전투 때 다리를 다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셨다. 그분에게 당시 이야기를 청했으나 극구 마다하셔서 결국은 듣지 못하였다.
  사실 ‘평화’처럼 국가주의적인 단어도 없다. 백령도 할머니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라는 알 수 없는 실체가 가한 평생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다스리며, 살고 있는 할머니들의 일상, 기억 혹은 아직도 버리지 못한 갈망을 씨실로, 작가가 할머니의 몸이 되어 어떤 제의를 치르는 장면을 날실로 자아 넣는 영상작업을 만들어 보았다.
**계획
1) 머리염색, 발 마사지와 얼굴 화장 등으로 할머니들의 몸을 살갑게 만지는 작업을 통해, 몸들이 직접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장을 마련한다.
2)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보여줄 수 있는 물건들을 가져오거나 찍어 오시도록 부탁하거나 찾아가서 찍어 온 이미지들이 영상작업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한다.
3) 전체적으로는 작가가 할머니를 대신한 영상과 할머니들이 직접 보여준 이미지가 서로 맞장구치면서 켜를 이루게 하고
4) 작가와 할머니들이 함께 어떤 의례를 거치는 과정을 찬찬히 포착하여 재구성한다.
할머니의 말씀-자막
가깝지. 이런데 오는 것 보담 배가 더 빨리 들어오고 하지
근데 여기가 그냥 초도 육도 막도 대청 소청 백령 뭐 다 이북으로 들어가는 데야.
하니까 그때 휴전되니까 백령도는 안내주고 초도 육도 먹도 하여튼 그 섬도 많아 쪼그만 요만큼하는 섬도 그거 다 내주고 일로 왔는데 지금 그사람들이 이거 내놓라고 지금 자꾸 집적거리는거야. 그러니까 서해 5도가 다 황해도라고
이제 가랑잎 갖다가 다 깔고 자고 거기서 덜렁 구덩이 파서 거서 물 나오면 그걸로 밥해먹고 그라믄서 밤에 산에서 먹고 자고 동네 내리가서 또 정탐하고 한게 40일이 걸리고 딱 40일되는 날 초도 들어왔다고. 산에서 한 40일을 빨치했지.
함포 사격하면은 먼데까지 쏘니까는 밭에서 일하다 들어와 밥먹다가도 죽고, 인민군들도 그냥 있다가도 무심코 댕기다가도 죽구, 비행기떠서 폭격하니께는 죽구, 그니까는 인제 사람이 다 죽구 10리가서 5리가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때는 평화가 되는거야. 옛날에 정감록에, 백령도에서 저 두무진 어드메 산골에서 사람 한 두어 명 산다고 하대. 그렇게 나왔다고 하대. 다 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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