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미술회관(현재 아르코 미술관) 1층에서 있었던 두 번째 개인전
1993년 7월19일 음력으로 6월1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환갑을 일주일 앞두고 젊은 나이에. 폐암이셨다. 담배를 줄대어 피시면서 ‘짧고 굵게’를 외쳤지만 짧은 것은 맞았지만 굵게는 아니었던 것같다. 내 생각에. 아니 뭐가 ‘굵게’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애들을 넷이나 낳아놓고 마누라한테 그 책임을 몽땅 지우고 혼자 홀가분했던 아버지. 옛날로 치자면 시한 줄 안 짓는 한량이고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이뻐라 하셨던 나의 아버지 내가 이나마 아직 자존감이 남아 있다면 그건 다 아버지가 나를 무조건 이뻐라 했기 때문이다. 굿바이 굿바이 ~ 당신이 나의 아버지였던 것에 감사하면서 . 전생에 아버지는 나를 버린 나의 연인이었을까?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예뻐했던, 이 여자는 이래서 좋고 저 여자는 저래서 좋고, 귀신같이 여자들의 마음을 가로채는 비법을 가지신 아버지.
평생을 옷장수로 사셨고 당신 스스로도 아름답게 옷입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던 나의 아버지. 어떨 땐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옷을 갈아 입으셨다. 생각은 정말 왕 보수에다 마초대왕인데 옷입는 건 패션모델 저리 가라로 맵시를 부리신 나의 아버지, 방사선 치료로 머리가 다 빠지니 화려한 모자를 또 그렇게 많이 사셨다. 그런 아버지 눈에 반항적(?)으로 넘 수수한 내 모습이 얼마나 맘에 안 드셨을까? 어린 마음에 그런 아버지가 맘에 안들어 소박해도 너무 소박한 옷차림을 고수하였다. 그땐 왜 그랬을까? 어떻게든 아버지마음에 안 들 궁리만 했으니~ 그래도 내가 옷입는 것에 관해서는 내 눈치를 살피셨던 것같다. 옷입는 취향에 관해서는 당신도, 싫을 만큼 남에게 소리를 들으셨기에.
그가 남긴 옷이 지하창고에 가득 있었다. 그 옷을 버리지도 못하고 어쩌지도 못한 채 일 년 여를 보내면서 그 옷들의 쓰임으로 제일 아버지가 기뻐하실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 옷들을 써서 해봐”. 옷들을 써서? 옷으로? 그래,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옷들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놀기를 잘했으니. 어려운 일도 아니다. 뭐. 그것뿐 나만의 의식(儀式)을 하기로 하였다. 의식의 장소는 아르코 미술관(구 미술회관). 미술관의 북쪽 켠으로 아버지가 남기신 옷들을 가지런히 쌓아 올리고 남쪽 끝에 연도를 만든다. 옷들로 만장을 만들고 작은 관들안에 흰옷을 넣어 바닥에 길을 만든다 . 길 끝에 아버지가 계시다. 벽에 아버지를 그리는 선시(禪詩)가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