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프로젝트를 위해 안산공단의 공장들을 다니면서, 나는 50여개 국이 넘는 나라들에서 온 노동자들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는 공단 노동자들의 그림과 글을 받아 그것들로 아이다 공장에 벽화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당연히 이 작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그들을 만나게 될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 바빠서 우리를 만날 시간이 없거나 정작 시간이 있으면 만나서 얘기할 공간이 없는 것이었다. 그동안 안산 외국인 주민센타와 용신 평생학습원, 경기도 미술관, 아이다 공장 식당에서 그들을 만났지만 사귀지 못했고 사귀기에는 접촉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우리는 그림을 그려 달라기에 바빴고 그들은 갸우뚱하면서도 그 짧은 시간에 나름대로 열심히 그림을 그려주었다.
무지무지 무서운 사장님을 그리고, 맞은 편에는 자기가 무릎 꿇고 앉아 사장님의 자비(“Be patient!”) 를 구하는 모습을 그렸는가하면 호치민의 시와 오래된 가요를 썼고 티모르의 지도를 세세하게 그렸다. 애틋한 연인과의 키스를 그리고, 돌아가고 싶은 자신의 고향과 자식의 얼굴을 그렸다. 자신의 공장을 그리면서 꼼꼼하게 그 일하는 현장을 설명해주기도 하였다. 안산시장에 있는 어떤 채소가게를 그린 친구는 동티모르친구였는데 가게 세부를 어쩌면 그렇게 세밀하게 기억해내서 잘 그리는지 거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고마웠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 줄 몰랐기 때문에 연락처를 달라고 하는 것은 립서비스같아 보였고 사실 거절당할 것같아 두려웠다. 당신의 그림이 어디에 붙을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귀담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난 모르겠다. 이 프로젝트를 통한 ‘미술적 체험’ 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어떻게 해야 이 차가운 회색 벽에 틈을 내고 그 속으로 뜨거운 숨을 불어 넣을 수 있을까? 이 프로젝트가 진화해야한다면 과연 어떤 방향으로일까? 고지가 저기라고 어떤 깃발을 들 수 있을까?
물론 안산공단에는 노동자들 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들이 있다. 그들이 바뀐다면 많은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아마 어쩌면 거기서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미술이 도달하고 싶은 그곳을 같이 상상해보는 것! 지금 서있는 곳 바깥에 존재하는 외부를 깨닫게 하고, 남을 또는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광기 혹은 폭력을 흡수할 스폰지같은 예술이 이곳에서 가능한지 함께 찾아보자는 것이라면 이 작업이 그 구체화의 작은 첫 발을 내딛은 것이라 할 수 있을지도?

홍현숙 2011.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