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닉된 에너지의 두께
홍현숙展 99. 2. 2∼2.12 원서갤러리

김홍희(미술비평, 2006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현재 경기도 미술관장)
월간미술 1999. 3



홍현숙은 옷으로 작업한다. 천이 아니라 이미 조형성을 지닌 옷들로 제3의 조형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조형의 단위인 옷이 바로 '옷'이기 때문에 그녀의 작업은 단순 형태미를 초월하여 생명·죽음·환생과 같은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옷은 디자인·유행과 관련되면서 문화의 기표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 이전에 삶과 직결된 생명의 지표로 기능한다. 배내옷에서부터 마지막 수의까지 인간은 옷과 더불어 살고 옷과 더불어 죽는다. 죽은 자의 옷은 물론 잠시 벗어 놓은 옷조차도 죽음처럼 섬뜩하고 을씨년스러울 때가 있다. 옷은 입음으로써 생명력을 부여받고 벗음으로써 그것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홍현숙은 평생동안 옷 장사를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옷.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들로 작업한다. 그것은 생명을 잃은 옷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녀 작업의 이러한 환경치유적 특성이 이번 원서갤러리 개인전에서 두드러진다.

그녀는 전시장 공간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스케일로 옷과 흙을 켜켜이 쌓아올리고 그 맨 위에 잔디를 심었다. 지층의 단면 같기도 하고 확대된 떡조각같기도 한 인공구조물 위에서 파란 잔디가 살아 숨쉬고 있다. 죽은 몸과 함께 흙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수의처럼. 켜를 이루고 있는 옷들이 종래는 흙으로 변하여 새 생명을 일구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녀의 98년도 국립극장 계단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치유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육중한 돌층계 사이사이를 부드러운 인간의 옷으로 메워 경화시키는 상징적 작업을 통하여, 국립극장을 살아 숨쉬는 진정한 문화공간으로 전환시키고자 염원한 것이다.

조형적 측면에서 그녀는 반복구조와 단순형태를 선호한다. 그러나 그녀는 무기적 산업재료 대신에 유기적인 옷을 사용함으로써 통상 미니멀리즘으로부터 일탈한다. 생명과 죽음의 사이클을 갖는 유기체와 같이 그녀의 옷 구조물은 시간의 추이 속에서 변화하고 시들며 회생하는 것이다.

켜켜이 쌓아올린 그녀의 옷더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형태와 밀도가 변하는 과정예술이요. 결국은 썩었다가 흙이 되어 새 생명으로 환생되는 재생예술인 것이다. 그녀 작업을 탈모던적·탈부계적 '이코페미니즘'의 수행으로 읽을 수 있는 까닭도 이러한 과정과 재생의 맥락에서이다.



Hong, hyunsook exhibition, feb.2~feb.12, 1999, Wonsu gallery

Kim, Hong Hee (art critic and Director of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2006 Gwangju Biennale Art Director)
in. Art in Culture, March, 1999.

Artist, Hyunsook Hong, works with clothes. Not cloth but clothes. She presents totally unexpected artworks from these clothes which already have their own shapes. Because of their innate characteristics, 'clothes', used as the unit of her objects, make her work transcend the simple beauty of form and imply the philosophical meaning such as life, death, and rebirth.
Although clothes are considered as the signifiant of culture due to their close relationship with design and fashion, originally they play a role of an index for life directly related to our lives. From clothes for newborn child to garments for the dead, human beings live with clothes and die with them. Garments for the dead often look desolate and eerie like death itself, even when they are temporarily taken off. Clothes are endowed with life energy by being worn and deprived of it by being taken off.
As her medium, Hong uses clothes which are discarded or left by her late father who ran a clothing business all his life. This kind of work is not unlike that of breathing new life into inanimate clothes. In this exhibition, this eco-therapeutic characteristic of her work is conspicuous.
She piles up layer upon layer of clothing and dirt on a grand scale, almost occupying the exhibition space and planted grass on the top of the pile. Upon this artistic structure like a cross-section of a stratum or an enlarged slice of rice-cake, green grass is alive and respiring. Like clothes for the dead will become a lump of soil with dead bodies, eventually, many-layered clothes will return to dirt and become nutrients for a new life.
Her '98 step project for National Theater of Korea may also be read in the context of a therapeutic quality. Through symbolic work filling in the gaps of massive stone steps with soft clothing, she desires to transform the theater to an authentic, pulsating, culture space.
From the formal perspective, she prefers repetitive structures and simple forms; however, she deviates from Minimalism by using organic clothes instead of lifeless industrial materials. Like organic objects having cycles of life and death, her clothes structures change, wither, and then revive as time goes by.
Her work with thick layers of clothes is Process art which shows change of its form and density with the passage of time. And also it is Reproductive art coming back to life after being decomposed into earth in the end. Because of this reason, her work can be interpreted as the accomplishment of post-modernistic and post-patriarchal eco-fem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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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닉된 에너지의 표출로서의 모성의 해방
홍현숙전·2. 3∼12·원서갤러리

홍미연
미술세계 1999. 3.



'모성(母性)'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그야말로 이중적이다. 언뜻 모성은 보드랍고 촉촉하고 따뜻한 그 무엇으로 어떤 슬픔과 진통과 분노도 잠재울만한 슬기로운 포용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는 부성(父性)의 억압성 앞에서 주눅들고 상처입은 감성들을 감싸안고 다독거리는, 더 나아가 이러한 부성 앞에 온 몸을 바쳐 저항해야만 하는 모성(母性)의 희생적인 면모를 강요하는 허울좋고 애처로운 감투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남성 지배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성(父性)에 반기를 드는 모든 움직임들을 애초에 잠재우려는 남성이데올로기의 교묘한 술수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남성우위의 질서속에서 '여성성'이라는 이름 뒤에 한발짝 얌전히 물러나 있는 '모성'의 소극적이고 겸손하기만 한 상투성에 대항하여 이들이 본질적으로 지닌 긍정성을 퇴색시키지 않으면서도 그간 차단된 '모성'의 은닉된 활달한 에너지를 과감하게 표출하는 홍현숙의 설치작업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당당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작가는 전시장 가득 가로와 세로 각 10여미터가 넘고 두께 4미터에 달하는 직사각형 모양의 흙을 쌓고 이에 켜켜이 옷을 삽입하여, 흐르는 시간속에서 누군가의 체온을 덥혔을 수공업적 산물로서의 '옷'과 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으로서의 대지 위에 새롭게 꽃피는 모든 생명의 모체인 경이로운 '모성'에 대한 시지각적 상징의 방법을 사용한다. 또한 흙으로 회귀할 인간적 체취로 상징되는 '옷'과 이들이 처한 공간인 흙의 숙명적인 어우러짐을 통해 생사소멸하고 순환하는 자연합일의 인간 삶에 대한 비유를 중량감있게 표출한다. 이로써 생명을 끊임없이 순환시키는 모태로서 만물의 요람과 무덤인 '대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어떤 권위의식도 없이 이렇게 인간사의 모든 흔적들을 담고서 다음 생명을 잉태하는 고통스런 산고의 과정을 의연하게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이 보여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만이 왜곡되거나 삭감됨 없이 활달하게 표출되는 생명의 에너지로서의 '모성'이 긴 왜곡의 고리를 끊고 스스로를 해방시키며, 이와 관계했던 어떤 권위주의적이거나 억압적인 타자 역시 진정 자유로운 자유를 구가할 수 있음의 가능성을 예비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