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무거움을 옷의 부드러움으로
홍현숙 설치미술전(9.14∼20 국립중앙극장 대극장 계단)

월간미술 1997년 10월호



부드러운 옷들을 이 딱딱한 콘크리트 도시를 치유하는 붕대로 쓴다? 옷들은 계단 사이사이로 들어가 그 일을 '자알'해냈다. 옷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숨을 간직한 것.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 속에서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그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부드럽게 진무해준다.

옷은 아름답다. 옷은 하나하나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하는, 이미 누군가의 작품이다. 화려한 옷들과 회색빛 돌계단의 하모니, 그러나 옷으로 하는 작품은 영구적이지 못하다. 인간 목숨의 칠십 년과 내 작품의 일주일. 일시적이어서 오히려 아름답다. 이 맹목적인 자본의 시대에 돈이 되지 않는 작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작업에 쓰는 옷은 새로 만든 옷이 아니다. 누군가가 쓰다가 버린 것. 그것들은 내 작품으로서 태를 바꾸어 쓰이다가 또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다르게 쓰일 수 있다. 그러므로 내 작업은 순환의 사이클에 역행하지 않는다. 거대한 자연의 소리에 자연스럽게 속해 있다. 나는 나의 작품이 문명의 쓰레기가 되어 이 지구를 더럽히게 할 순 없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콘크리트는 회색빛 위엄과 어찌해볼 수 없는 완강함으로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그 대표적인 숨막힘의 공간. 국립극장 대극장 흔들기? 시각적으로 흐트러 놓기. 시각은 감성을 얼마만큼 지배할 수 있을까. 그 거대하고 무겁기 짝이 없는 국립극장을 떠받치고 있는 돌계단. 계단은 또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 곳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사람이 밟은 돌은 그래서 훨씬 녹녹하다.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옷들이 받혀주고 있는 계단을 밟는 태도. 발을 내딛을 때. 거기 보이는 미세한 떨림. 그야말로 사뿐히 즈려 밟기. 하나하나의 계단을 즈려 밟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순간 예술가로서 행복했다. 잠깐의 환각을 불러일으킨 미술사로서 행복했다.

계단의 한 중앙에서 꽃밭에 들어온 것 같다고 즐거워하시는 할아버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몰래 옷을 잡아 당겨 보고는 다시 끼워 놓느라 쩔쩔매는 꼬마, 연극보러 왔다가 전시까지 보고 간다며 즐거워하시는 분, 작품을 보려고 일부러 내리진 않지만 작품 앞에서 저게 뭘까 천천히 차를 모는 택시 기사 아저씨들.

우리, 꼭 전시장만 고집하지 말기. 주위의 공공장소, 우리 머리 속에서 버려진 회색빛 공간들,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들여다 보기. 끌어 안아 보기 그 속에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