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은닉된 에너지'엿보기

정민영
미술세계 1999. 4.



참된 예술가는 그에게 과(課)해진 재료와 조건에 개의치 않는다. 그는 자신의 조형하려는 의지를 표현케 하는 조건이면, 어떠한 조건도 받아들인다.
- 하버트 리이드


빛바랜 청바지, 양복저고리, 색동바늘꽂이, 의자와 책상, 침대 등. 홍현숙씨의 설치전은 '자신의 조형의지를 표출할 수 있는 재료'라면 부딪히는 족족 영입해 들이는 남다른 오브제 응용력을 보여준다. 작가는 평범한 사물들을 채택하여 그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여성의 입장에서 풀어낸다. 먼저 '공간'에 대한 작가의 민감한 생리부터 언급해보자. 한때 '무대미술'을 공부한 바 있기도 한 작가는 '작품'과 '공간'의 절묘한 궁합을 꿈꾸며, 공간에 즉(卽)해서 작품하는 '공간 친화적인 작업성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작가의 설치와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4층짜리 전시공간 전관에서 펼쳐진 <홍현숙展>은 크게 4가지 주제로 꾸며졌다. 첫번째, 「그 여자의 방」(지하)은 현실적인 삶의 공간이다. 색동천으로 치장된 침대, 의자, 식탁, 소파, 창문, 그리고 천장에 줄줄이 매달린 '빗줄기'등 이곳은 흡사 어느 가정집을 갤러리로 옮겨놓은 듯했다. 단지 골격만 남긴 세간살이들을 색동천으로 촘촘히 감거나 장식했다는 점이 실물과 다를 뿐이다.

사물을 비사물화시키는 색동천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딱딱한 사물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자 "감싸서 자기화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이들 설치물은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내보내고 방이라는 공간 속에서만 갇혀 살아야 하는 여자들에게 있어서 '방'은, 한편으로는 '창살없는 감옥'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양면적인 성격을 지닌 방의 구조적인 한계상황을 '상상'의 힘으로 돌파한다. 그 상상의 편린들이 지상 1∼3층의 전시내용을 이룬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설치전은 '현실세계'와 '마음의 세계'라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시의 무게중심은 '지하', 즉 「그 여자의 방」에 실려 있다. 2,3층은 「그 여자의 방」이라는 큰 그릇에 담긴 개개의 내용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여자'의 '마음의 세계'인 1∼3층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두번째 주제인 「인간의 그물· 뱀」(1충)에는 수백 점의 헌옷들을 대형그물에 넣어 전시장 바닥에 눕혀놓거나 벽에 기대어놓았다. 인간의 체취가 묻은 헌옷들, 그 속의 '은닉된 이야기'가 집단으로 포획되어 있는 형국으로 옷가지 하나하나는 일체의 군말을 허용하지 않는 시(時)의 자구처럼 모두 살아 있는 메시지의 담지체이다. 그것들은 체취로 존재하는 '부재의 존재성'을 사유(思惟)하고 있다.

세번째 주제인 「초원」(2층)에는 1천여 점의 낡은 청바지들을 잘라서 몇 개씩 묶어놓은 다발들로 전시장이 가득 채워져 있다. 마치 배추를 촘촘히 심어놓은 배추밭을 연상시킨다. 용도가 폐기된 옷가지들은 존재의 흔적만을 겨우 보여줄 뿐. 그 포즈는 침묵으로 평등하다.

네번째 「죽은 자들을 위한 방」(3층)에는, 위패와 그 속에 고인을 대표하는 물건들을 나란히 배열한 작품들이 벽면에 설치되어 있다. 열쇠, 마늘, 실패, 화장품, 목걸이, 돈, 술, 화분 등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죽은 자들의 생시의 삶을 상징하는 이 물건들은 살아 남은 자들의 삶을 직시하게 하는 강한 환기력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이 작가가 집요하게 천착하고 있는 '은닉된 에너지'란 무엇일까? 작가에게 있어서 '은닉된 에너지'란 삶의 이면, 혹은 존재의 이면에 숨겨진 '숨은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고, 그 숨겨진 이야기를 삶의 공간 속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작업인 것 같다. 그렇게 작가는 부재하지만, 사물들을 통해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부재의 존재'를 말한다. 여기서 '에너지'라는 말은 '이야기'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요컨대 홍현숙의 설치작업은 양지보다는 양지의 배면에 웅크리고 있는 음지를 주목하고, 그 음지 속의 싱싱한 빛을 채취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또한 음양의 이치에서 보자면 음력(陰力), 즉 여성의 힘에 대한 집요한 탐구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